나의 이야기

창의성에 관한 흔한 착각과 아이디어 한 방의 함정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 4차 산업혁명이라는 말이 국내에 등장한 지도 벌써 10년이 넘었다. 하지만 최근 AI와 기술의 발전은 그야말로 놀라울 따름이다. 코로나가 끝난 후 전 세계적인 화두가 되었고, 최근에는 티핑포인트를 넘어선 것 같다. 미국과 이란의 전쟁에도 인공지능이 쓰였다. 전쟁에 AI가 쓰인다는 말은 더 이상 공상과학 소설이 아니라 눈앞의 현실이다.

최근에는 로봇의 성능도 압도적으로 발전하여 엄청난 힘과 유연성을 동시에 갖춘 모습을 보인다. 두 대의 로봇이 서로 눈을 맞추며 사람처럼 상호작용하는 모습도 낯설지 않다. AI의 근간이 되는 반도체 산업은 슈퍼사이클을 맞이했고,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주가도 폭등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변화들이 현실이 되고 있다.

흔히 4차 산업혁명 시대는 전문가와 창업가의 시대라고 말한다. 고용시대의 종말과도 맞닿아 있다. 다니엘 핑크의 <프리에이전트 시대>를 보면 20여 년 전 미국에서 시작된 변화가 시차를 두고 이제 우리나라에도 본격적으로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인공지능은 피지컬 AI와 결합하여 사람들이 기피하는 3D 업종부터 빠르게 대체하고 있다. 어중간한 단순 반복 업무는 대부분 사라질 가능성이 높다. 사무직도 예외가 아니다. 중간 관리자급 이상이 아닌 신입 직원의 역할이 크게 줄어들 거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들이 경력을 쌓을 기회가 사라질 수 있어 국가가 제도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논의도 본격화되고 있다.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나도 작년에 고용변호사를 모두 내보냈다. 그 자리는 영상 재판과 법률 AI가 대신하고 있다. 고용시대의 종말을 피부로 체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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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전문가와 창업가의 시대에 필요한 지식은 무엇일까? 당연히 특정 분야의 전문성일 것이다. 학생들의 진로 선택만 봐도 알 수 있다. 대학생들은 의대나 로스쿨처럼 전문직으로 이어지는 길을 선호한다. 공학을 전공하고 연구를 한다면 최소 박사과정이나 해외 유학까지 염두에 두는 경우가 많다.

다른 학과도 마찬가지다. 학부 졸업만으로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대학에서 기본적인 소양과 기초를 쌓고, 일을 하면서 전문성을 키워 나간다고 생각한다. 문제는 그 전문성과 경력을 쌓을 일자리를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그래서 처음부터 창업을 목표로 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취업이든 창업이든 사회에서 자신의 역할을 하려면 특정 분야의 전문성을 쌓아야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창업도 아이디어 하나만으로 승부를 보는 것은 영화에서나 가능한 이야기다. 특정 분야에서 오랫동안 경험을 쌓고 시장을 깊이 이해한 사람이 창업에 성공할 가능성이 훨씬 높다. ‘안 되면 다시 취업하지.’라는 마음으로는 버티기 어렵다. 창업은 인생을 걸고 승부해야 하는 일이다.

그래서 누구나 전문성을 쌓고 싶어 한다. 누가 하든 똑같은 업무가 아니라, 나만 할 수 있는 일을 원한다. 여기서 남이란 AI도 포함된다. 직업적 필요와 자신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현실적인 이유이기도 하고, 고유한 존재로 인정받고 싶은 인간의 본능 때문이기도 하다.

어느 분야를 선택하든 자기만의 확실한 무기가 있어야 하는 시대다. 직업이 사라지고 잉여 인간에 대한 두려움이 커지는 미래에는 오랫동안 한 분야에서 꾸준히 일해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존중받게 될지 모른다. 아직도 그 역할이 필요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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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면 창의성이란 무엇일까? 이에 관해서는 다양한 정의가 있다. 새로운 것을 발명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의 것을 새로운 눈으로 보는 것,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보는 것, 서로 다른 사물 간의 새로운 관계를 발견하는 것 등이다.

스티브 잡스(Steve Jobs)가 아이폰을 선보인 이후 이런 분위기는 더욱 강해졌다. 아이디어와 상상력, 창의력을 가져야 한다는 말은 이제 스타트업 업계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대기업에서도, 학교에서도, 가정에서도 어딜 가나 창의성을 이야기한다. 창의적 도전, 창의적 교육, 창의적 인재에 이르기까지 ‘창의’라는 말이 들어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다.

챗GPT가 등장한 이후에는 더욱 심해졌다. 대답은 AI가 하니 이제는 질문을 잘하는 사람이 필요하다고 한다. 질문이 곧 창의성이라는 말도 나온다. 남다른 사고를 하고, 남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봐야 한다고 한다. 뻔한 질문을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그래야 살아남을 수 있다며 소위 또라이, 덕후, 괴짜를 주목한다. 한때 <또라이들의 시대>라는 책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워낙 창의성, 창의력, 창의적 인재라는 말이 회자되다 보니 너도나도 창의성을 이야기한다. 하지만 정작 창의성이 왜 중요한지, 어떻게 길러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히 답하는 사람은 드물다. 그저 변화의 시대에 도태되지 않고 살아남기 위해서 창의적이어야 한다는 필요성만 이야기하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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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 이런 고민을 했다. 주변에서 창의적이어야만 살아남는다고 하니 뭔가 창의적이어야 할 것 같기는 한데, 단지 생존을 위해 필요하다는 말은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려웠다. 내 주변의 대부분 사람들은 특별히 창의적이지 않아도 잘 살고 있었고,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도 드물었다. 창의성은 천재나 예술가의 영역이라고 생각했다.

또한 창의성이란 남들과 다른 기괴한 것, 획기적인 것을 떠올리는 능력이라고 여겼다. 꾸준한 훈련보다 아이디어 한 방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변호사가 된 뒤에도 젊은 감각으로 완전히 새로운 무언가를 시도해 보고 싶었다. 기존 법조인들과 같은 길을 걷는 것이 지루하게 느껴졌다. 다른 전문직 사람들과 모여 아이디어 회의도 하고, 크고 작은 스타트업에도 동업자로 참여했다. 지금이라도 변호사를 그만두고 완전히 새로운 일을 해야 하나 고민하기도 했다.

여러 책을 읽고 인문학 강연과 포럼, 세미나를 찾아다녔다.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뇌과학과 자연과학 강의도 들었다. 하지만 분명한 답을 얻지는 못했다. 그러다 오종우 교수가 쓴 <예술수업>을 읽고서야 비로소 답을 찾았다. <예술수업>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창의성은 바른 생각, 정직한 자세의 반대편이 절대 아닙니다. 뭐든 제대로 알고 난 뒤에야 창의성이 나오는 법입니다. 전문성과 애착이 바로 창의성의 기반입니다.”

맞는 말이었다. 창의성이라고 해서 무조건 새로운 것, 특이한 것만 떠올리는 것이 문제였다. 애초에 그런 생각 자체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창의성은 오랜 기간 숙련된 전문가의 영역에 더 가깝다. 한 분야에서 오랜 기간 훈련하고 경험을 쌓다 보면 기존과는 다른 결과물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다. 처음부터 본질을 외면한 채 새로운 것만 찾으려 해서는 안 된다.

아마 나를 비롯해 많은 사람들이 이런 함정에 빠지는 이유는 창의적인 사고로 성공한 천재 사업가들의 이야기가 영화나 드라마에서 극적으로 그려지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책을 읽고 나서 창의성은 그런 게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오히려 본업에 더욱 충실하면서 오랜 기간 훈련을 거듭해야 한다는 점을 깨달았다. 영화나 드라마 속 주인공들의 실제 과거를 찾아보니, 그들 역시 오랫동안 해당 분야에서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이었다. 창의성의 진짜 기반은 철저한 전문성과 숙련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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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부터 소위 딴생각을 접고 본업에 충실하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왔다. 한 때는 행동하지 않고 생각만 했다. 그리고 생각한 것을 행동한 것으로 착각했다. 부끄럽지만 로또에 당첨되기를 바라는 심리와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답은 의외로 가까운 곳에 있었다. 새로운 것은 오래된 것 위에서 탄생하는 법이었다. 남들과 다른 삶을 살기 위해서라도 남들과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이다.

또한 삶에서 창의성이 왜 필요한지도 책을 통해 깨달았다. 창의성은 엄청난 성공이나 업적을 이루기 위해서도 아니고, 도태되지 않고 생존하기 위해서도 아니었다. 창의성은 학습이나 사업에 필요한 기술이 아니라 주체적인 삶 그 자체이며,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는 방식이었다.

<예술수업>의 표현을 빌리면, 진정한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실질세계를 충실히 살아가면서도 실질세계에 함몰되지 않는 시선을 가져야 한다. 현실을 살면서도 현실에 갇히지 않을 때 비로소 주인 된 삶을 살 수 있다. 이는 애초부터 현실을 외면하는 태도와는 결이 다르다.

이 사실을 깨닫고 나니 예술과 놀이가 왜 창의성과 연결되는지도 비로소 이해되었다. 인류 역사에서 한 번도 사라진 적 없는 예술과, 인생의 처음과 끝에 늘 함께하는 놀이도 결국에는 주체적인 삶, 자기 삶의 주인으로 살아가기 위한 활동이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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