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고도를 기다리며』스무 살에 몰랐던 진짜 의미
사무엘 베케트의 연극『고도를 기다리며』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품이다. 최근에는 90세의 신구 배우와 86세의 박근형 배우가 함께 무대에 올라 전국 공연장을 가득 채우며 큰 화제가 되었다.
나는 대학 1학년 때 신촌 산울림 소극장에서 수업 과제로 처음 이 연극을 보았다. 그전까지 연극을 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난생처음 본 연극이 바로『고도를 기다리며』였다. 아무런 사전 정보도 없었기에 기대가 컸다. 그러나 그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90분이면 충분했다.

『고도를 기다리며』에는 에스트라공과 블라디미르, 두 사람이 등장한다. 둘은 서로에게 묻고 답하는 일을 반복한다.
에스트라공
“이제 뭘 하지?”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아, 그렇지.”
잠시 후 또 묻는다.
에스트라공
“이제 또 뭘 하지?”
블라디미르
“고도를 기다려야지.”
에스트라공
“아, 그렇지.”
90분 내내 이런 대화가 반복된다. 아무런 동작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연극은 그냥 끝난다. 사람들은 박수를 치고 극장을 나갔다.
‘도대체 이런 황당한 연극이 다 있나.’ 아무런 스토리도 메시지도 교훈도 없었다. 영감은커녕 허무함만 남았다. 그저 ‘헛소리로 가득 찬 연극’이라고 생각했다.
극장을 나오면서 돈도 아깝고 시간도 아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함께 본 친구들도 같은 반응이었다. 다시는 연극을 보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과제를 낸 교수님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때의 나는 고도가 무엇인지도, 이 연극이 무엇을 말하는지도 전혀 몰랐다.
그 의미를 깨달은 것은 12년이 지난 뒤였다. 바로 내가 창의적인 아이디어 하나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던 시절이었다. 행동하지 않고 생각만 하던 시절이었다.

연극 속 고도는 하나로 해석되지 않는다. 누군가는 꿈이라 하고, 누군가는 희망이라 한다. 어떤 이는 신과 같은 절대적인 존재라고 말한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고도가 무엇이냐가 아니다. 고도를 대하는 등장인물의 태도다.
블라디미르와 에스트라공은 연극이 끝날 때까지 자신들이 기다리는 고도를 그저 기다리기만 한다. 함께 행동하지도 않고, 서로를 독려하지도 않는다. 그저 말하고 기다린다. 또 말하고 기다린다. 그러다 마지막에 이런 말을 남긴다.
에스트라공
“안 왔어?”
블라디미르
“안 왔어.”
에스트라공
“이제는 너무 늦었군.”

사람들에게는 저마다의 고도가 있다. 꿈도 있고, 희망도 있고, 이루고 싶은 목표도 있다. 늘 그것을 상상하고 기대한다. 언젠가는 이루어질 것이라 믿는다. 누군가 꿈이 뭐냐고 물으면 신이 나서 이야기한다. 하지만 연극은 주인공들의 행동을 통해 우리에게 묻는다.
당신은 정말 그 꿈에 맞는 행동을 하고 있는가?
『고도를 기다리며』는 사람들이 꿈꾸고, 기대하고, 상상하면서도 현실에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모습을 부조리극으로 보여준다. 내가 스무 살에 느꼈던 것처럼 황당한 연극도, 헛소리로 가득한 연극도 아니었다. 평생 기다리기만 하고 행동하지 않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 주는 충격적인 현실극이었다.
그 의미를 깨닫는 순간 누구보다 내 자신이 부끄러웠다. 연극 속 주인공이 바로 나였다. 꾸준히 행동하기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하나로 인생을 바꿀 수 있다고 믿었다. 창의성을 배우겠다며 본업을 소홀히 했다. 무엇보다 매일 고도를 기다리기만 했지, 실제로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이대로라면 인생이라는 연극이 끝나는 순간 나 역시 “고도는 끝내 오지 않았다.”며 자책하고, “이제는 너무 늦었다.”고 후회할 것만 같았다.

아들아. 아빠의 부끄러운 과거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우리 주변에도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이 많다. 창의적인 아이디어 하나로 세상을 바꾸겠다며 CEO 명함부터 파는 사람, 획기적인 한 방으로 인생을 역전시키겠다는 사람, 꿈을 위해 노력한다고 말하면서도 행동하지 않는 사람, 내일부터 습관을 바꾸겠다며 오늘도 같은 하루를 반복하는 사람이 있다. 모두 고도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인생은 기다리기만 해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는다. 아무런 성과도 결과도 없다. 결국 신세를 한탄하고 자신의 인생을 원망하게 된다. 주체적인 삶, 자기 삶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는 눈앞의 현실과 발밑의 행동에 집중해야 한다. 생각한 것은 행동한 것이 아니다. 인생이라는 연극이 끝날 때까지 고도를 기다리기만 해서는 절대 안 된다. 과연 나에게 고도는 무엇인지, 그것을 이루기 위해 오늘 무엇을 해야 하는지 스스로 물어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행동을 지금 바로, 시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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