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시계, 아빠가 배운 것을 이제 너에게

벌써 16년 전,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책이 있었다. 엄청난 관심과 논란을 동시에 낳았던 책이다. 청년들에게 삶의 위로를 전하는 내용이지만, 고통의 사회적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는 비판도 함께 받았다. 저자인 김난도 교수도 좋은 의도로 낸 책이 그렇게까지 비판받을 줄은 몰랐을 것이다.
이유는 당시 시대 상황과 관련 있었다. 2010년은 전 세계적으로 신자유주의 흐름이 거세지고 금융위기의 여파가 채 가시지 않았던 때였다. 국내에도 청년들의 일자리가 줄어들고 각자도생이 본격화되던 시기였다. 소위 ‘헬조선’이라는 말이 등장하기 시작한 때였다.
위로가 필요한 청년들이 많았기에 초대형 베스트셀러가 되었지만, 동시에 국가의 따뜻한 보살핌이 필요한 청년들에게 ‘청춘은 원래 아프니까 참고 이겨내라’는 말을 건네며 책까지 팔아먹는다는 비판도 받았다. 말 많고 탈 많았던 그 책은 이후 정치권에서 자주 회자되었고, 정치인들이 청년들의 표심을 얻는 도구로 활용하면서 확대 재생산되었다.
그 시절의 아빠 역시 청년이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취업과 대학원 진학 등 몇 가지 선택지를 마음에 두고 있었지만, 늘 불안하고 막막했다. 지금에서야 조금은 여유를 갖고 돌아보지만, 당시에는 다른 청년들처럼 학교 밖의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전혀 몰랐고 어떻게든 버티며 살아남아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그래서였는지 적어도 아빠에게는 그 책이 큰 위로가 되었다. 특히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은 첫 장에 나오는 ‘인생시계’라는 표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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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서 말하는 인생시계란 80년의 인생을 하루 24시간으로 환산해 보는 것이다. 삶의 시작과 끝을 하루의 시작과 끝에 비유한 것이다. 계산해 보면 10년에 3시간, 1년에 18분이 흐른다. 스무 살은 겨우 오전 6시, 서른 살도 오전 9시에 불과하다. 그러니 조급해하지 말고 인생을 길게 바라보며 살아가라는 내용이었다. 누가 뭐래도 아빠는 그 표현이 참 좋았다. ‘하루는 작은 인생이다.’라는 격언과도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그래서 책을 읽고 얼마 후 책에서 알려준 방식을 그대로 따라 해 보기로 했다. 매일 보이는 책상 위에 고장 난 빈폴 시계를 올려두었다. 그리고 생일이 올 때마다 시곗바늘을 18분씩 앞으로 옮겼다.
당시 처음 맞춰 놓은 시간이 오전 9시였다. 서른 살이었다. 하루 일과로 치면 집에서 모든 준비를 마치고 이제 막 출근하는 시간이었다. 묘하게도 변호사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던 시점과도 겹쳤다.
그 시절 마이너스 통장 대출을 받아 짧은 해외여행을 떠났는데, 런던의 빅벤 시계탑이 정확히 저녁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스스로를 위로하고 다짐하는 마음으로 짧은 메모를 남겼다. 그때의 감정을 고스란히 너에게 전하고 싶어 그대로 인용한다.
| 80년 인생을 하루 24시간으로 나누면 1년에 18분, 10년에 3시간이 흐른다. 내 인생시계는 오전 9시.이제 준비를 마치고 세상에 출근하는 시간. 누군가 새벽잠을 얼마나 설쳤든, 아침밥을 얼마나 든든히 먹었든, 출근길이 얼마나 힘들었든 간에 모두에게 게임은 지금부터라는 생각이다. 저녁 6시가 될 때까지 가족들과 평화롭고 행복한 저녁을 보내기 위해 지금부터라도 정말 의미 있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겠다. |
이 글을 쓰면서 다시 한번 시계를 봤다. 어느덧 12시 54분을 가리키고 있다. 매년 생일이면 빠짐없이 18분씩 앞으로 돌렸고, 첫 번째 시간을 맞춘 뒤 정확히 13년이 흘렀다.
당시 저자였던 김난도 교수가 지금의 아빠보다 나이가 좀 더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13년 전 아빠가 읽었던 그 책을, 이제는 또 다른 책으로 엮어 너에게 전하고 있다. 이렇게 세대를 건너 책을 통해 지혜가 전수되는 것이 새삼 신기하다. 물론 아빠는 너에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 시간을 소중히 여기라는 말을 전하고 싶어서 언급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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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래도 시간은 삶의 처음과 끝을 규정한다. 살아있음의 본질이며,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진 유일한 자원이다. 그래서 시간을 잘 관리하는 습관은 나이와 상황을 불문하고 중요하다. 특히 시간이 많이 남은 젊은 시절일수록 소중함을 알고 잘 관리해야 한다. 건강할 때 건강을 돌봐야 하듯, 시간이 많을 때일수록 시간 다루는 법을 배워야 한다.
아빠는 젊은 시절 시간을 낭비하며 살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예상치 않게 남는 시간마저도 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시달린 적이 많았다. 그것이 늘 조급하게 만들었고 삶을 옥죄었다. 빠르게 무언가를 이루어야 한다는 스트레스도 안겨 주었다. 긴 호흡으로 삶을 돌아보거나 장기적인 계획을 세울 만큼 마음의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실속은 없는데도 열심히 살고 있다는 느낌이라도 받아야 하루가 끝난 것 같았다. 원하는 방향으로 제대로 가고 있는지 돌아보는 시간보다, 매일 열심히 살다 보면 언젠가는 목적지에 도착하겠지라는 태도에 가까웠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그것은 시간을 잘 관리하는 게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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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잘 관리한다는 건 단순히 잉여 시간을 없애고 매사에 치열하게 사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삶의 템포를 조절하는 것에 가깝다. 인생에는 앞만 보고 힘껏 달려야 하는 시기가 있고, 잠시 걸음을 늦추고 자신을 돌아봐야 하는 시간도 있다. 때로는 내 선택보다 주변 상황 때문에 속도가 달라지기도 한다. 내 걸음이 빠르든 느리든 남과 비교할 필요는 없다. 어느 한쪽이 더 좋은 것도 아니다. 삶에는 두 시간 모두 소중하고 꼭 필요하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언제 어떤 상황에 있든 그 상황을 이해하고 자신의 템포를 조절하는 것이다. 마라톤도 초반에 너무 질주하면 끝까지 가지 못한다. 반대로 달려야 할 때 달리지 못해도 결승선에 닿을 수 없다. 남의 속도를 따라가거나 주변을 지나치게 의식하면 자신의 페이스를 잃는다. 자신의 페이스를 알고 적절한 템포를 유지해야 목표한 지점에 도달할 수 있다. 인생은 속도를 겨루는 단거리 경주가 아니라, 리듬을 지켜야 하는 긴 여정에 가깝다. 무엇보다 그래야만 레이스 자체를 즐길 수 있다.
사랑하는 아들아. 아빠는 네가 누구보다 빨리 가는 사람이 되기보다, 끝까지 자기 걸음으로 걸어가는 사람이 되면 좋겠다. 때로는 천천히 가도 좋고 힘들면 잠시 쉬어도 괜찮다. 중요한 것은 남보다 앞서는 것이 아니라, 네가 원하는 방향으로, 네가 원하는 템포로 가는 것이다. 무엇보다 네가 걷는 여정 자체가 즐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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