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변호사가 글을 잘 쓸 것이라는 착각

“아빠는 변호사니까 글 쓰는 것이 직업이라 그런 거 아니야?”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변호사나 판사가 법률 서면을 쓰는 것은 글을 잘 쓰는 것과 관련이 없다. 오히려 법률서면만 오래 쓰다 보면 문장력이 떨어질 수도 있다. 법조인의 글이 아름답기 어려운 이유가 있다.

법률 서면은 어디까지나 법률용어를 활용해서 상대를 설득하거나 법적 판단을 이끌어 내기 위한 주장이다. 회사로 치면 보고서에 가깝다. 정해진 용어를 사용해야 하고, 외국어 번역체의 흔적도 여전히 남아 있다. 법률용어도 이제는 한글화 작업이 진행되어 과거보다 순화되었지만, 기성 법조인들이 학생 때부터 익혀 온 글쓰기 방식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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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을 읽어 본 적이 있는지 모르겠다. 소송을 하지 않는 이상 일반인이 판결문을 읽을 일은 거의 없다. 대통령 탄핵과 같은 큰 사건이 있을 때 헌법재판소 결정문을 접하는 정도다. 그런데 유명 사건의 헌법재판소 결정문은 평소 매일같이 쏟아지는 하급심 판결문에 비하면 글의 완성도가 상당히 높은 편이다. 때로는 감동을 주는 문장도 있다.

반면 법원의 판결문을 보면 무슨 말인지 도무지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외계어처럼 느껴지는 경우가 많다. 주어와 술어가 맞지 않고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의 문장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있다. 헌법재판소 결정문과 달리 사건 당사자를 제외하면 일반인이 읽을 일이 없고, 판결문은 결론과 이유만 전달하면 된다는 인식이 강하다 보니 문장 자체에는 큰 비중을 두지 않는다.

변호사의 법률 서면도 다르지 않다. 상대방 서면의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판례와 법률용어를 그대로 옮겨 적는 일이 많다. 실제 소송 결과를 좌우하는 것은 증거와 법리이지 문장력이 뛰어나다고 해서 판사가 손을 들어 주는 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장을 다듬는 데 시간을 쓰기보다 다른 부분에 더 많은 에너지를 쏟는다. 검사들의 공소장이나 의견서도 마찬가지다. 이게 글인지 숫자인지 코드인지 헷갈릴 정도로 초등학생의 글보다 보기 흉한 경우도 있다. 심지어 법조인들이 작성한 불명확한 문장 때문에 의뢰인의 분쟁이 더 커지는 일도 있다.

또한 판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법률 서면은 핵심만 간결하게 담은 서면이다. 밀려드는 사건을 처리하고 방대한 기록을 읽어야 하는 상황에서 같은 내용을 반복하거나 장황하게 서술하면 오히려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렵다. 그래서 변호사들도 핵심만 압축해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이렇게 하다 보면 법률 서면은 점점 더 보고서에 가까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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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변호사나 법조인이 되려면 글쓰기를 잘해야 한다거나, 법조인이 되면 필력이 좋아질 거라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이다. 글쓰기를 위한 교육도 없고, 있다 하더라도 대부분 법률 서면 작성법을 배우는 수준이다. 글쓰기 수업이라기보다 법률 수업에 가깝다.

정리하면, 법조인의 글은 외국어 번역체의 영향을 많이 받고, 단문보다 복문을 선호하며, 수동태와 부사를 자주 쓴다. 한마디로 아름다운 글을 쓰기 어려운 환경이다. 그래서 법조인이 글을 잘 쓰기 위해서는 오랜 관성을 극복하는 개인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농담 반 진담 반으로 역대 최고의 항소이유서는 법조인이 아닌 유시민 작가가 20대 중반 감옥에서 쓴《항소이유서》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역대 최고의 항소이유서를 쓴 사람이 아이러니하게도 법조인이 아니라 베스트셀러 작가라는 사실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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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 나름 글을 잘 쓴다고 생각했는데 어느 날 내 문장이 보기 흉한 코드처럼 느껴질 때가 있었다. 몸에 밴 습관 때문이었다. 법률 서면만 쓰다 보니 문장력이 떨어졌고, 어색한 문장을 그대로 두는 나쁜 습관도 생겼다.

그래서 의식적으로 다른 글을 많이 쓰려고 노력한다. 좋아하는 책을 필사해 보기도 하고, 좋은 책을 반복해서 읽기도 한다. 하지만 가장 좋은 것은 자신의 문장으로 직접 써 보는 것이다. 이렇게 책을 쓰는 것도 그런 노력의 일부다. 개인적으로는 로스쿨 과정에도 글쓰기 수업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법률가의 언어와 작가의 언어는 다르다. 좋은 법률가와 좋은 글쟁이도 같은 사람이 아니다. 보고서를 쓰는 모든 직장인에게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직업적 글쓰기의 관성에 지배당하지 않고 아름다운 언어를 구사하려면 개인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늘 품격 있는 우리말을 배우고 익히며 꾸준히 연습해야 한다. 직업은 글쓰기의 방향을 결정할 뿐, 글의 품격까지 결정해 주지는 않는다. 아름다운 문장은 결국 스스로 연습한 사람에게만 허락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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