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 시대의 살아있는 화석, 종이신문을 펼치는 이유
Everything changes.
인류 문명과 역사를 다룬 역작 <사피엔스>의 첫머리에 등장하는 문장이다. 책을 감명 깊게 읽고 한동안 카카오톡 프로필에도 이 문장을 적어 두었다.
그렇다.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한다. 진리를 변하지 않는 것이라고 정의한다면, 어쩌면 이 세상의 유일한 진리는 ‘모든 것은 변한다’는 사실일지도 모른다.
우주적 시각에서 보면 사람은 개미 한 마리, 먼지 한 톨 같은 존재다. 수천 년 역사 속에서 진정한 변화를 만들어 낸 사람은 극소수였고, 대부분은 예측 가능한 삶을 살다 생을 마친다. 하지만 짧은 인생이라도 변화를 이해하고 적응하려는 노력은 매우 중요하다. 생존을 위해서이고, 성장을 위해서이며, 무엇보다 지혜롭게 살아가기 위해서다.
우리는 변화를 이해하기 위해 매일 뉴스를 보고 정보를 찾는다. 인터넷 기사를 검색하고, SNS를 둘러보며, 사건과 이슈를 가족이나 친구들과 이야기한다. 매체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게 변한다. 한때는 온 가족이 저녁마다 TV 앞에 둘러앉아 뉴스를 보는 것이 일상이었다. 이후에는 네이버가 뉴스를 소비하는 중심이 되었고, 검색어 순위가 그날의 어젠다를 만들었다. 지금은 유튜브 알고리즘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으며, AI에게 “오늘 뉴스를 정리해 줘.”라고 말하면 몇 초 만에 핵심 내용을 요약해 준다. 미디어 환경은 이렇게 빠르게 변한다. 이 글을 쓰는 시점과 책이 출간되는 시점조차 달라져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기술 발전에 따라 정보를 유통하는 매체는 바뀌어도 변화를 따라가려는 인간의 노력은 변하지 않는다. 변화에 적응하는 것은 본능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변화에 잘 적응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분명히 나뉜다. 누구는 앞서가고 누구는 뒤처진다. 아빠는 네가 적어도 변화에 뒤처지는 사람은 되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뉴스와 신문을 꾸준히 접했으면 한다. 특히 종이신문을 읽으면 좋겠다.
디지털 시대가 되면서 종이신문은 빠르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지하철에서도, 식당에서도 종이신문을 펼친 사람을 보기 어렵다. 비교적 글에 익숙한 변호사들조차 읽지 않는다. 우리 회사에서도 종이신문을 읽는 사람은 나 하나뿐이다. 대한변협에서는 몇 해 전부터 법률신문 종이 구독을 해지하면 포인트를 주는 제도까지 생겼다.
하지만 아빠는 지금도 종이신문을 읽는다. 앞에서 말한 ‘살아있는 화석’이 바로 아빠다! 지하철이나 식당에서 신문을 펼치면 사람들은 신기한 눈빛으로 바라본다. “요즘도 종이신문을 보는 사람이 있네?” 하는 표정이다. 심지어 교통약자석에 앉아 있는 어르신들조차 대부분 휴대폰을 본다.
학생 때 읽었던 <아프니까 청춘이다>에서 저자는 “종이신문은 여전히 힘이 세다.”라고 말했다. 그렇게 말한 이유는 16년 전 당시에도 이미 종이신문은 사라져 가는 매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16년이 지난 지금도 아빠는 그 말이 맞다고 생각한다. 이유는 단 하나다.
종이신문에는 알고리즘이 없다.
인터넷과 유튜브는 내가 좋아하는 정보만 계속 보여 준다. AI 역시 질문하는 사람의 관심사를 중심으로 답한다. 편리하지만 그만큼 세상을 좁게 볼 위험이 크다.
반면 종이신문은 다르다. 관심 없는 기사도 눈에 들어오고, 보기 싫었던 칼럼도 읽게 된다. 지면의 배열만 봐도 지금 중요한 이슈가 무엇인지 한눈에 알 수 있다. 알고리즘이 아니라 편집의 흐름을 따라 정보를 만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신문도 논조가 있다. 그래서 하나의 신문만 읽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하지만 적어도 알고리즘이 만들어 내는 확증편향에서는 훨씬 자유롭다. 능동적인 정보 탐색이 가능하다는 뜻이다.
신문을 계속 읽다 보면 변화의 흐름을 읽는 능력도 생긴다. 관심 없던 분야에서 뜻밖의 통찰을 얻기도 하고, 전문가들의 의견을 통해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도 넓어진다. 독서와 마찬가지로 불편함을 감수하며 집중하는 힘도 길러진다. 무엇보다 신문을 읽는 시간만큼은 디지털 기기에서 잠시 벗어날 수 있다는 점도 큰 장점이다.
아빠는 20대부터 종이신문을 구독해 왔다. 지금도 매일 아침 사무실 책상 위에는 신문이 놓여 있다. 점심을 먹으러 갈 때도 휴대폰 대신 신문을 들고 나간다. 따로 시간을 내지 않아도 된다. 자투리 시간만 활용해도 충분하다.
신문 읽기는 속독 훈련에도 큰 도움이 된다. 입시 공부도 결국 제한된 시간 안에 얼마나 빠르고 정확하게 읽고 이해하느냐의 싸움이다. 글을 빨리 읽는 능력은 평생에 걸쳐 엄청난 경쟁력이 된다.
물론 나도 인터넷 검색도 하고 유튜브도 본다. 하지만 종이신문만이 줄 수 있는 장점은 여전히 있다고 믿는다. 종이신문 읽기는 소멸해가는 아날로그 경험 중에서 희소성이 곧 경쟁력이 되는 대표적인 습관이라고 생각한다. 남들이 안 할수록 오히려 더 할 필요가 있다. 변화에 적응하는 확실한 무기라는 점을 잊지 않길 바란다.

또한 중요한 것은 정보를 균형 있게 받아들이는 태도다. 몸이 건강하려면 영양소를 골고루 섭취해야 하듯, 정신도 마찬가지다. 다양한 정보를 골고루 받아들여야 건강해진다. 특정 매체, 특정 언론, 특정 유튜브 채널, 특정 인플루언서의 정보만 반복해서 보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시야가 좁아진다.
도파민을 자극하는 기사와 영상은 처음에는 재미있다. 하지만 반복해서 보다 보면 인생의 중요한 판단까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세계관과 가치관이 조금씩 바뀌고, 심하면 극단적인 행동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경험이 부족한 젊은 시절일수록 더욱 그렇다. 내 머리로 생각한다고 하지만, 알고 보면 남의 머리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합리적인 사람이니까 절대 그렇지 않아.”라고 생각하지 마라. 이것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뇌의 물리적 실체에 관한 이야기다. 특정 정보가 반복적으로 입력되면 뇌는 실제로 영향을 받는다. 해마를 비롯한 뇌의 구조와 시냅스의 연결 방식이 변하는 것이다. 그러니 뉴스나 신문을 볼 때도 다양한 관점을 균형있게 접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다만 균형을 잡는다는 것은 완전히 중립적인 정보를 얻어야 한다는 뜻은 아니다. 우리는 흔히 중도, 중립이라는 것이 존재하고, 그 입장을 취하는 것이 선하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정치 성향에서 이런 모습이 드러난다. 투표를 하거나 정당을 지지할 때, 자신의 정치적 성향에 ‘중도’라는 말을 슬쩍 끼워 넣으면 마치 합리적인 사람이라는 인상을 받는다.
하지만 모든 학문에는 객관이 없다는 말처럼, 특정 사안에 대한 견해가 중립이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정치적 입장을 포함한 모든 것이 그렇다. 개인이든 집단이든 나름의 입장과 의견이 있으며, 그것이 존재하는 한, 중립이라는 것은 실체 없는 관념에 불과하다. 사람마다 관점과 가치관은 다를 수밖에 없으므로, 중요한 것은 중립을 찾는 것이 아니라 여러 입장을 충분히 살펴본 뒤 자기만의 기준을 세우는 것이다.

아들아. 친구들이 모두 휴대폰만 붙잡고 있다고 부화뇌동하지 말고, 집에서든 학교에서든 종이신문을 읽어 보길 바란다. 세상은 늘 변한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변화에 잘 적응하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사회적 성공과 개인적 성취는 물론, 행복한 삶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기억하기 바란다.
뉴스를 보거나 기사를 접할 때도 다양한 정보를 골고루 접하고, 너만의 생각을 만드는 습관을 들이면 좋겠다. 어떤 입장이든 상관은 없다. 중요한 것은 내 머리로 소화하고 나만의 생각을 만들어 냈다는 사실이다.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과 남의 이야기를 따라 하는 사람은 시간이 지나면 분명한 차이가 난다. 인생의 내공이 다르고, 사안을 보는 깊이가 다르며, 통찰력이 다르다. 어릴 때부터 이런 습관을 들이면 자기만의 주관이 뚜렷해지고 고유한 매력도 생긴다.
기억하자. 세상은 늘 변한다. 그러나 자기 머리로 생각하는 사람은 변화에 휩쓸리지 않는다. 다양한 정보를 취하되, 나만의 생각을 갖는 것. 그것이 변화하는 세상에 적응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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